AI를 의심하라고만 가르치면, 아이는 그다음을 모릅니다
"AI 말을 그대로 믿지 마라." 지금 가장 널리 퍼진 AI 교육법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의심했는데 기계가 옳았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미국 교육자의 글을 읽고 저희 수업 기준을 다시 봤습니다.

지난 글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아이가 AI의 답을 그대로 받지 않게 한다고, 출처를 찾아보고 결과가 이상하면 다른 방법과 견줘보게 한다고요.
그 문장을 다시 읽게 만든 글을 만났습니다. 미국의 교육자 스테판 바우샤드가 쓴 글입니다. 그는 학교들이 AI 앞에서 내놓는 답을 네 가지로 나눕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원회를 꾸리기, 교육용 AI 제품을 사기, 그리고 아이에게 AI를 의심하는 법을 가르치기.
앞의 셋은 그도 짧게 지나갑니다. 시간을 들이는 쪽은 네 번째입니다. 방 안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내놓는 답인데 틀렸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멈췄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 거기 적혀 있었으니까요.
의심하는 법만 가르치면 왜 반쪽인가
오해를 먼저 막겠습니다. 검증을 그만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필자도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토론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근거를 원문까지 따라가지 않은 학생이 시합에서 지는 장면을 매주 봅니다.
문제는 아이 손에 그 능력 하나만 쥐여줬을 때입니다. 우선 시간이 이 능력의 편이 아닙니다. 틀린 곳을 찾아내는 솜씨의 값은 기계가 정확해질수록 떨어집니다. 아이의 자세를 통째로 "오류 찾기"에 걸어두면, 해마다 이길 확률이 낮아지는 시합에 아이를 세워두는 셈입니다.
더 큰 구멍은 따로 있습니다.
이 틀 안에서는 아무도 학생에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기계에 이의를 제기했는데 기계가 옳은 것으로 드러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그것이 아이들이 평생을 보낼 실제 조건인데, 우리에게는 그것을 위한 수업 계획이 없습니다.
필자는 이 교육과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이것은 학생에게 영원한 조수의 자리를 훈련시키는 교육과정입니다. 그 상대는 조수로 남아 있을 시스템이 아닌데도요.

다음 단어를 맞히는 기계라는 설명은 유통기한이 지났습니다
"AI는 결국 다음에 올 단어를 확률로 찍는 것"이라는 설명을 저도 썼습니다. 몇 년 전에는 정직한 설명이었습니다. 왜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지, 왜 사용자에게 맞장구만 치는지, 왜 계산을 틀리는지가 그 한 문장으로 풀렸으니까요.
지금은 아닙니다. 필자가 드는 이유는 신비롭지 않고 구체적입니다. 배우는 방식이 흉내내기에서 결과 판정으로 옮겨 갔습니다. 흉내내는 쪽은 자기를 가르친 사람을 넘어서기 어렵지만 결과로 배우는 쪽은 아무도 보여주지 않은 방법을 찾아냅니다. 데이터도 인터넷에 올라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만들어 씁니다. 전문가가 문제를 어떻게 쪼개고 망가졌을 때 어디로 되돌아가는지를 통째로 기록해 학습에 넣습니다.
답하기 전에 생각한다는 것도 큽니다. 예전 모델은 물으면 곧바로 뱉었습니다. 여섯 자리 곱셈을 암산으로 즉시 답하라고 다그치는 것과 비슷했지요. 요즘 모델은 속으로 초안을 쓰고 나쁜 길을 버린 뒤에 답합니다. 합치면 계획을 세우고 오래 실행하고 막히면 방법을 바꾸는 물건이 됩니다. 아직 AGI는 아닙니다. 다만 학부모님이 재작년에 만져보신 그 AI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AI를 보고 판단하셨나요
AI가 별것 아니더라는 판단은 대개 한 화면에서 나옵니다. 로그인하지 않았거나 무료로 쓰는 기본 설정, 검색창 옆에 붙은 요약, 한 줄 질문에 한 줄 대답. 그 화면은 실제로 지어냅니다. 출처를 만들어내고 계산을 틀립니다. 그 화면을 두고 쓴 경고는 전부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그 회사가 가진 가장 좋은 물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원문에 따르면 오픈AI의 최상위 모델은 무료 사용자와 로그아웃 상태에서는 아예 열리지 않습니다. 학교가 AI를 평가할 때 손에 쥐는 것은 거의 언제나 회사가 공짜로 나눠주는 쪽입니다.
필자는 값을 치르고 최상위 설정을 쓰는 쪽에서 매일 일합니다. 어려운 질문 하나를 여러 회사의 최상위 모델에 넣고 각자의 답을 서로에게 보여주며 흠을 찾아보라고 시킵니다.
검증 교육과정에서 학생은 감사하는 쪽이고 기계는 감사받는 대상입니다. 제가 실제로 쓰는 환경에서는 기계가 감사하는 쪽입니다.
돌아오는 것은 그가 잡아내야 할 오류가 아니라고 합니다. 당신의 전제가 틀렸다, 질문이 답을 미리 정해두고 있다, 당신이 자신 있게 말한 숫자는 원자료에 다르게 적혀 있다는 쪽이랍니다.
저도 같은 방식으로 씁니다. 답 하나를 받고 끝내지 않고 다른 모델에 그 답을 보여주며 어디가 틀렸는지 물어봅니다. 그러면 제가 놓친 오류를 잡아주는 일보다 제 전제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더 자주 돌아옵니다.
틀린 곳 찾기만 배운 아이를 그 방에 넣어보십시오. 배운 동작이 하나뿐인데 그 동작을 쓸 자리가 없습니다.

기계가 옳을 때 아이에게 남는 것
필자는 답을 한 단어로 내놓습니다. 저자성입니다.
수행이 흔한 물건이 될 때 가치가 남는 것은 저자성입니다. 무엇이 할 만한 일인지 고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것에 자신을 걸고,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답하는 것.
기계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결과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이어서 드는 방법들이 전부 오래된 것이어서 반가웠습니다. 진짜 문제를 붙잡고 결과물을 진짜 청중에게 내놓는 프로젝트 수업, 자기 주장을 무너뜨리려는 상대 앞에서 그 주장을 지켜야 하는 토론, 사람의 불편에서 시작해 실패를 거치며 고쳐 나가는 설계 수업. 새로 발명할 것도 없고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여기서 셈이 하나 필요합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2038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마치면 2042년입니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인 학생은 2030년 2월에 고등학교를 나옵니다.
AGI가 언제 오는지는 합의된 정의도 날짜도 없습니다. 필자가 정리한 전망들은 2028년 안팎에 몰려 있고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는 몇 년 안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합니다. 그 전망이 다 틀려도 됩니다. 지금 있는 것이 5년 더 좋아지기만 해도 조건은 달라집니다.
어느 쪽으로 셈해도 기다렸다 결정하자는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 시간 안에 있으니까요.

저희 수업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나
세 가지는 지난 글들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만들 것을 학생이 정합니다. 과정을 기록으로 함께 받습니다. 설명하지 못하면 완성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고 한 줄을 더하려 합니다. AI가 학생의 방법보다 나은 방법을 내놓았을 때 그냥 갈아끼우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방법과 무엇이 다른지 말하게 하고, 바꾸겠다면 왜 바꾸는지 그대로 가겠다면 왜 그대로 가는지를 말하게 하겠습니다.
기계가 틀렸을 때만 아이가 할 일이 있는 수업이라면, 기계가 맞는 날 아이는 할 일이 없어집니다. 저희가 피하려는 것이 그 장면입니다.
그럼 AI가 틀린 곳을 찾는 연습은 안 해도 되나요?
합니다. 그것 하나로 끝내지 않을 뿐입니다. 아이에게 물을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틀린 데 있었어?"가 아니라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입니다.
초등학생에게 AGI 이야기를 해야 하나요?
하지 않습니다. 초등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라 습관입니다. 무엇을 만들지 정해보고, 만들다 막혀보고, 다 만든 뒤에 남 앞에서 설명해보는 경험이 그 습관을 만듭니다. AGI라는 말은 몰라도 됩니다.
학교에서는 AI를 못 쓰게 하는데, 학원에서 쓰게 해도 되나요?
학교의 판단에는 학교의 사정이 있고 저는 그것을 존중합니다. 다만 금지는 시간을 벌어줄 뿐 준비를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저희는 쓰는 자리와 쓰지 않는 자리를 나눠 둡니다. 무엇을 만들지 정할 때와 만든 것을 설명할 때는 쓰지 않습니다.
마무리
원문에서 가장 아픈 문장은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연구소들에는 AGI를 향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 계획은 자기 이익에 따른 것이고 틀렸을 수도 있지만, 존재하고 예산이 붙어 있고 사람이 배치돼 있습니다. 교육에는 부정행위에 관한 지침 문서가 있습니다.
이 문장은 저희 학원에도 그대로 겨눠집니다. 학원에도 AGI를 향한 계획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아이가 기계보다 잘하지 못하게 되는 날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 그 질문만은 수업 설계의 맨 앞에 두려고 합니다. 답을 다 쓰지는 못했고 시작은 했습니다.
무서워하실 일은 아닙니다. 아이가 기계보다 빨라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 무엇을 할지 고르고 그 선택에 답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좋은 교육이 예전부터 하던 일입니다.
앞선 글들에서 코딩을 배우는 이유와 챗봇을 쓰는 기준, 기업이 보는 능력을 다뤘습니다. https://lounge.letscoding.kr/blog/coding-in-ai-era https://lounge.letscoding.kr/blog/chatbot-is-not-ai https://lounge.letscoding.kr/blog/what-children-need-in-ai-hiring-era
원문은 여기서 읽을 수 있습니다. 스테판 바우샤드, "AGI: Education's Blindspot", 2026년 8월 14일. https://stefanbauschard.substack.com/p/agi-educations-blindspot
라운지에 올라온 학생 작품은 누구나 로그인 없이 열어볼 수 있습니다. https://lounge.letscoding.kr/works
학원 소개는 여기 있습니다. https://lounge.letscoding.kr/academy
렛츠코딩앤플레이학원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출판로 46-5, 301호 063-714-2536

